권모술수로 단련된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은… 그야말로 파란(波瀾)의 연속이었다. 이 전쟁을 언제 어디서 멈출 것인가? 정전협상의 핵심은 군사분계선 설정. 38선으로 복귀를 주장하는 공산군 측에 맞서, 현 접촉선에서 최소한 개성과 서해5도를 확보하려 했던 유엔군 측! 그러나 공산군 측 역시 서해 해상통제선을 제외시키는 등 오늘날 NLL 문제가 촉발된 미완의 여지를 남겨두는데... 가조인한 군사분계선 합의가 지켜졌다면 이 가슴 아픈 전쟁은 1951년 12월 27일에 끝나야 했었다. 그러나... 3가지 쟁점이 문제였다. 심지어 공산군 측에서는 감독위원회에 포함시킬 중립국으로 소련을 내세우기까지 하는데, 길어진 정전협상의 최대 난제는, 복잡다단한 사연을 지닌 포로 문제였다. 숫자싸움으로 번진 포로 문제가 결국엔 중국의 자존심이 걸린 한 판 승부로 변질되고 마는데... 마오쩌둥을 충격에 빠뜨린 포로심사 결과는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