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한계선 철폐 명령과 함께 운산에서 수풍으로 향한 국군 제1사단! 그런데 북진하던 중 갑자기 중공군의 공격을 받게 되고 이틀간의 공방전 끝에 결국 보급선이 차단되며 중공군 포위망에 갇히게 된다. 국군 1사단의 진격이 지연되자 평양에 있던 미 1기병사단까지 투입되는데…. 중공군의 공격을 마주한 국군 1사단과 미 1기병사단의 운명은? 온정리·운산전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바로 그 일대의 지형. 깎아지른 산지 사이를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감입곡류하천은 유엔군의 강한 화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결국 청천강 이북으로 전군 퇴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3일간 혈전을 치르며 중공군의 남진을 저지한 국군 7사단. 국군 7사단이 활약한 비호산전투를 분석해본다. 한편 같은 시기, 중공군·북한군의 애를 태운 동부전선 상황은? 동부전선의 중요한 자연 요충지 중 하나인 개마고원. 그리고 그 개마고원을 점령하기 위해 반드시 장악해야 하는 황초령. 황초령은 신라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 중 하나였는데... 또한 그 황초령 너머에는 바로 장진강을 막으며 만들어진 장진호가 있다! 황초령의 가치를 알고, 서둘러 황초령을 먼저 점령한 중공군·북한군. 그리고 황초령을 탈환하기 위해 투입된 국군 수도사단과 3사단. 동해안에서의 함포 사격과 공중폭격까지 지원되지만 황초령으로 가는 길은 쉽게 뚫리지 않고 결국 황초령을 확보하기 위해 미 해병 1사단이 투입되는데... 중공군의 역습을 물리치며 드디어 황초령 입구인 진흥리까지 도착한 미 해병 1사단. 그런데 중공군이 갑자기 사라졌다? 동부✗서부전선에서 동시에 사라진 중공군.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역전다방에서 확인해본다.